탐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신간 '탐정의 세계'를 읽고
페이지 정보

본문
장르소설, 그중에서도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는 굳이왜씨.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탐정'이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는데.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 같은 고전적 탐정은 치안과 사법 시스템이 촘촘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유효했지만 지금은 어떨까? 현실에서의 탐정이란 직업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단 말이지. 마침 미스터리 전문 브랜드 나비클럽에서 신간을 출간한다길래 알라딘 북펀드에서 펀딩 한 '탐정의 세계'가 도착했다. 사실 받아본 지는 조금 되었는데 게을러서 이제서야 후기를 남기게 된다.
저자는 탐정학 1세대 학자인 염건령 교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된 분인데, 오랫동안 범죄와 싸워오신 경력이 있어 믿음이 간다.
몰랐는데 북펀드에 참여했다고 책 뒷면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나다순인데 굳이왜씨라서 앞쪽에 있네. 그럼 인상 깊은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다시 복기해 볼까나.
1부 '탐정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에서는 '탐정적 사고'를 배울 수 있다. 탐정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혼란과 왜곡, 편견과 착각 등의 장애물을 넘는 훈련을 한다. '현장은 엉망이었다'라는 표현 '책상 위 서류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서랍은 열려 있었으며, 컵이 바닥에 깨져 있었다'라고 기술한다. 추리 소설이나 영화 속 탐정이 주인공인데 비해 현실에서의 탐정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연이다. 탐정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문제를 분석하는 '걸어 다니는 사회철학자'와 다름없다.
2부 '우리가 몰랐던 탐정의 정체' 부분에서는 본격적으로 탐정이라는 직업과 그 산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탐정이라는 직업이 법률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2020년에 와서야 합법화되었다. 비도크나 핑터튼, 헨리 키신저 같은 탐정과 관련한 과거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탐정으로서 마주하는 윤리적 문제도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선과 악이 분명한 작품 속 탐정과 달리, 현실에서는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면 수락해야 할까? 혹시 의뢰인이 스토킹을 위해 의뢰를 했을지도 모른다.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찾아냈더니, 가정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가출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하면 책을 읽어보도록 하자.
3부 '탐정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의 인구변화와 범죄 발생 현황 등으로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예를 들면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의 보호망 범위를 벗어날 위험이 커지게 된다. 전통적인 범죄 발생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스토킹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사기꾼은 판치는데 역설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이 너무 강해 상대방에 대한 신원 조회는 어렵다. 한국의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범죄 수법이 진화하면서 전문 탐정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지식 재산권, 기술 유출, 사생활 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 특화된 탐정이 활약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4부 '탐정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에서는 외국의 탐정의 모습을 정리했다. 탐정의 나라 하면 대표적으로 영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스페인이나 독일, 스웨덴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탐정은 활동하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세계적인 셀러 '밀레니엄' 시리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고, IT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라 디지털 기술을 탐정업에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제본 상태가 불량하다는 건데, 페이지가 붙어있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 읽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넘어갑시다. 만약 이 책에서 탐정 일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기대했다면 전혀 방향성이 다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탐정의 세계'는 거시적인 시선에서, 탐정이 보는 세상에 대한 담론을 담은 책이다. 뭔가 자극적인 일화나 사건을 기대했다면 다른 책이나 TV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동안 잘 알지 못했고 문학 속 캐릭터로만 피상적으로 접했던 탐정이라는 직업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탐정의 세계'. 앞으로도 탐정들이 공권력의 사각지대를 채워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만 끝!
- 이전글흥신소의뢰가격 의뢰비용 막연했던 걱정이 명확해진 순간 25.10.17
- 다음글탐정사무소 배우자의 불륜문제 탐정사무소 25.10.17